설날이라 광주와 목포에 다녀왔다. 이번 설은 연휴가 짧아서 다들 시간 알뜰하게 잘 써서 왔다갔다 하는 것 같다. 1박 3일 다녀오고 나니 정신이 하나도 남질 않았네. 게다가 이번에는 길지도 않은 시간 광주와 목포에서 각각 K후배와 P후배를 만나 술을 한잔 마셨다.

예전에는 명절이면 티비를 보거나 겜방에 가는 것이 고작이었는데, 이제 나도 나이를 먹다 보니 이런 날이라도 날 잡아서 후배를 따로 만나는 짓 따위를 하고 앉았다. 그러다 보니 우리 가족의 이동 일정과 맞아떨어지지 않아서, 엄마마마와 아빠마마와 형이 광주에서 목포로 이동하는 저녁에 나는 광주에서 K후배를 만나고 광주 집에서 하룻밤을 자고 다음날 기차편으로 목포에 합류하는 일정 계획을 세웠다-_-

명절에 기차표가 있을까 하겠지만 광주에서 목포로 가는 표는 생각외로 널럴하다. 예전에도 家內왕따 답게 이런 개인플레이를 많이 했었으므로 이런 상황을 잘 알고 있다. 서울서 오는 사람들이 호남을 지나며 차근차근 빠져나가다 보니 막장에 이르는 광주-목포 구간에는 오히려 열차 출발 직전에 바로 표를 구할 수 있는 상황이다.(물론 연휴 첫날 같은 피크 때는 쉽지 않다.)

룰루랄라 통일호 표를 한장 구해서 열차 안으로 들어간다. 열차가 정차하고 사람들이 새로 올라타게 되면 자리 앉아있는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그 사람에게로 쏠리게 된다. 입석을 구해서 빈 자리를 옮겨 다니는 승객들이, 혹시 이 자리의 주인이 왔나 하며 일제히 쳐다보는거다.

이제 내가 객차 안으로 들어왔고, 좌석 번호를 확인하며 차근차근 앞으로 나간다. 내가 지나치는 순간 앉아있는 입석 승객은 안도의 한 숨을 내쉬며 다시 또 뒤에 들어오는 사람을 쳐다본다. 41번 창쪽 좌석, 찾았다.

아니 근데 이게 뭔일이람. 내 좌석과 그 옆자리에는 젊은 부부가 앉아있었다. 비록 내가 이해심 넓은 사람이라지만 간밤의 이동과 음주로 나도 피곤하거등요. 제 자린데요 말 하는 이 순간, 입석표와 좌석표를 가진 승객 사이에 권력 관계가 형성 된다. 비록 권력은 달콤하다지만, '아직 갈 길이 먼데, 벌써 와버렸군.' 하며 잠깐 동안 스치는 그 원망의 눈빛은 그닥 반갑지 않다. 하지만 나도 피곤한 것은 마찬가지니 어쩔 수 없..

...어야 하는데 이번엔 사정이 다르다. 깡마른 남편과 피곤해 보이는 아내. 그리고 아내가 품 안에 안고 있는 것은 정신도 제대로 차리지 못하고 있는 애새끼. 젊은 아내는 혹여라도 애가 깰까봐, 추울까봐 담요에 싸서 조심이 품에 안고 있었다.

"저..전주까지만 가는데..."
"아 그러세요."

마침 뒷 자리가 비어있어서 거기에 앉았다. 비록 나는 저 부부가 내리기 전까지는 편안히 잠들지 못하고 누군가 차내로 들어올 때 마다 긴장을 해야겠지만, 그렇다고 저 부부에게 자리를 내놓으라고 할만큼 모진 사람은 아니다. 수십분이 지나고 그네들의 목적지에 도착했고 나는 내 자리를 찾을 수 있었다. 명절이라, 아내는 아직 깨지 못한 애를 조심히 안아올랐고 남편은 차력하듯 대여섯개의 짐 보따리를 절묘하게 손가락 사이에 끼워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p.s. 아 입석 얘기 밖에 못했네-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