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온국민이 축구(국가 대표팀)에 열광하는 동안에도 꿋꿋이 야구와 함께 생활했던 야구 소년이다. 그것도 프로야구에는 인생의 모든 게 들어있다는 생각에 프로야구 인생론을 펼치기도 하는 열혈 야구 소년이다. 이렇도록 거창하게 "인생은 프로야구"라고 외치는 내가 야구 얘기를 시작하게 되면 타라라락 휘갈기는 손가락에 우스스 떨어지는 야구 얘기 한보따리, 어이쿠 이건 정말 한도 끝도 없겠다. 하지만 사무실에 떡 하니 앉아서 장문을 휘갈기는 것은 "난 위풍당당 월급 도적이요!"라고 선언하는 것과 다를바 없으니, 죄송합니다만 저는 아직 짤리고 싶지 않습니다-_-

그래도 베쓰볼이라는 떡밥을 그냥 넘길수야 없지. 나도 야구를 좋아한다. 여타의 스포츠와 다른 야구만의 특징이 매력적이다. 야구는 시간 제한이 없으며 턴turn 방식으로 공수를 주고 받는다. 경기 전체의 8/9를 뒤지다가도 마지막 한 턴에 모든 것을 뒤 엎을 수 있다. 이런 젠장 그러니까 포기 하지 말라. 야구든 인생이든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것이 아니다. "It ain't over till it's over.", 이 말을 했던 사람이 바로 전설적 야구 선수 요기 베라라는 사실을 아는가.

야구를 두고 보통 기록과 통계의 스포츠'라고 한다. 이것은 경기장 안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이 기록되고 통계적 데이터로 활용된다는 의미이다. 가장 기본적인 통계로, 이 선수는 몇 번 타석에 들어서면 안타를 몇 방 날리니 xx.x%의 확률로 안타를 칠 것이다 하는 타율 계산이 그렇다. 이건 간단하지만 여기에 상황이 하나씩 더 추가 된다. 가령 1. 어떤 타자가 2. 낮 경기, 3. 홈 구장에서, 4. (특정한)왼손 투수를 맞아, 5. 주자 2루의 상황에서, 6. 2아웃에, 7. 볼 카운트 2스트라이크 3볼의 상황에서 8. 안타를 얼마의 확률로 치더라 하는 각각의 데이터를 가지고 결과를 예측할 수 있다. 이따위 세심, 소심하고 오묘한 스포츠라니, 딱 소심한 내 취향이다-_-

그런 통계의 스포츠로 끝났다면 야구의 매력이 반감되었겠지. 지금은 한국 야구 위원회 사무총장을 맡고 있는 하일성 아저씨가 한창 해설 할 때 자주 쓰던 말이 있다, "허허허 야구 몰라요.". 통산 타율이 0.333인 타자가 있다. 이 타자는 세 번 중 한 번을 안타 칠 확률을 가지고 있는 타자다. 그럼 그 날 경기 앞 선 두 타석에서 범타로 물러난 그 타자가 세 번 째 타석에 득점 찬스를 맞았다면 이 타자는 안타를 칠 수 있을까, 없을까? 앞 선 타석에서 맥없이 삼진으로 물러난 것으로 보아 오늘은 영 컨디션이 좋지 않은 것 같으니 이번에도 아웃일까? 아니면 안타 칠 확률이 1/3인데 앞 선 두 번의 기회에서 못쳤으니 이번에는 한 번 안타를 날릴 때 쯤 되지 않았을까?

과거의 모든 기록이 통계로 활용되어 결과가 예측 가능한 스포츠라지만 막상 경기 중에는 언제나 통계의 뒤통수를 날리는 결과가 튀어나온다. 그리고 당연히 아웃시킬 것 같았던 방어율 1점대의 강력한 투수가 정규시즌 무 홈런의 약한 타자에게 끝내기 홈런을 맞는 순간, 통계와 예측은 무너지고 우리는 희열을 느낀다. 이것이 야구다. 야구 몰라요.

그 외에 여러가지 야구만의 매력이 있지만 애초에 얘기를 꺼낸 목적이 그게 아니었으니 야구 얘기는 여기서 자제 하도록 하자. 하지만 문 닫기 전에 하나만 더 얘기 해야지. 야구는 아마도 골프와 함께 규칙이 가장 복잡한 스포츠 중 하나일테고, 기록과 통계로 모든 것을 파악 할 수 있는 깐깐한 스포츠이다. 하지만 실제 경기 안에는 너무나 인간적인 일이 많이 일어난다.

야구에서 잘 때리는 타자를 얘기 할 때 기준이 되는 것은 3할의 타율이다. 즉 세 번의 기회 중에 한 번만 성공을 해도 잘 하는 타자라는거다. 사람은 실수를 하기도 하고, 당연히 언제나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언제나 성공할 필요도 없다. 야구는 이렇듯 두 번 정도의 실수는 눈감아주는 지극히 너그러운 스포츠다.

하나 더 추가 하자면 보통 정규시즌에는 3번 정도 연속으로 같은 팀과 맞붙는데, 아무리 강한 팀이라도 약팀에게 3번 연속 이기는 경우는 많지 않다. (WBC의 강팀이었던 우리국대도 일본팀에게 2연승 후 1패T_T) 리그 전체에서 아무리 강팀이라고 해도 승률은 6할 정도일 뿐이고, 맨날 지는 것 같은 최약체 팀도 끝나고 보면 승률 4할 정도는 찍는다. 아무리 못해도 10번 중 4번을 이긴다는 얘긴데, 아무리 꼴찌라도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하지는 않다는 거다. 재밌는 것은 타자가 10번 중 4번 안타를 날리면 최고의 타자로 칭송받는다는 것. (ML 마지막 4할 타자 테드 윌리암스가 1941년;; 한국 프로야구 백인천 1982년 원년 처음이자 마지막;;;)


이쯤에서 피 끓는 야구 소년들의 마지막 안식처, 야구 연습장에 대한 얘기를 하자. 공과 땅만 있으면 모든 준비가 끝나는 축구에 비해서 야구는 공과 방망이가 있어야 하고, 최소한의 장소와 인원도 필요하다. 게다가 두 팀의 수준이 맞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투수쪽에서) 최소한의 역량은 갖추고 있어야 게임을 할 수 있다. 축구는 뻥 차고 뛰고 또 뻥 차도 재미 있지만, 야구를 한답시고 모였는데 투수가 던지는 공은 좀처럼 포수가 잡을 수 없는 곳으로 날아가고 타자는 배트를 휘둘러보지도 못한 채 멍하니 서있어야만 한다면 전혀 게임이 성립하지 않는다.

그러고 보면 요즈음 야구를 할 수 있는 장소도 없고 사람도 없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열혈 야구 소년들은 오백원 짜리 동전에 청춘을 담고 비장한 각오로 피칭 머신 앞으로 모이는 수 밖에 없는거다. 하지만 역시 이제 야구는 유행이 지났는지 연습장이 하나 둘 사라지고, 이제는 그야말로 마음 먹고 한 번 찾아가야 하는 수준이 되어버렸다.

그렇다지만 내 가슴팍으로 파고드는 불 같은 광속구를 기다리며, 양손에 꼭 쥔 싸구려 알미늄 배트를 냅다 휘둘러 후드려패는 그 경쾌한 순간을 잊을수 있을리가 없다. 지름을 재보면 십센치도 되지 않을 작은 공을 그보다 폭이 좁은 배트로 정확히 때려내는 순간, 양손에 묵직한 감각이 느껴진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허리가 돌아는 동안에 시간은 잠시 멈춘 듯 하고, 눈에 보이는 것은 오로지 쭉 뻗어가는 홈런볼이니. 여운이 남아있는 손 맛을 곱씹으며 멍 하니 서있다 보면 찌릿찌릿한 희열이 손끝에서 가슴까지 전해진다. 이런 젠장, 내가 이 맛에 야구를 못 끊지.

점심 시간 직전에 적기 시작한 얘기가 중간에 밥 먹고 오니 생각보다 길어졌다. 그러느라 낮잠을 자야 할 점심시간이 다 지나버렸네. 오늘은 거창한 마무리를 하고 싶었는데 또 실패다. 하지만 나는 언제나 점심을 먹고 남는 시간에 여자친구에게 전화를 거는 습관이 있는데 오늘은 전화도 걸지 않고 글을 써댔으니, 이 정도면 내가 야구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증명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그녀보다 야구가 좋다고 말했다가는 야구 방방이로 얻어맞겠지만-_-


p.s. 짤방은 야구를 모르는 사람도 이름은 들어봤을 영원한 홈런왕 베이브루스. 저런 몸매로도 영웅이 될 수 있는 스포츠는 아마도 야구 뿐일테니, 야구란 얼마나 인간적인 스포츠인가-_-